재작년 이맘 때 즈음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일요일 새벽 2시쯤이었고 술에 취해 택시로 귀가하던 중이었다. 취중에 뒷좌석에 널브러져 있다가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대신동 서부경찰서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 대기 중인 택시를 마티즈가 뒤에서 받아 버린 것이었다. 정신을 잃었지만 아주 잠깐 동안이었고, 이내 정신을 차려 고개를 움직이고 팔다리를 움직여 보았으나 달리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택시 기사에게 다친 곳은 없냐고 물었더니 대답은 않고 욕을 욕을 하며 마티즈 운전자에게 뛰쳐나가기에 나도 택시에서 내렸다. 내가 탔던 택시는 뒤 범퍼가 깨어지고 방향지시등 한쪽이 나간 반면 마티즈는 보닛이 바람 들어간 치마처럼 훌렁 들려 있었다. 다행히 그쪽도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사고가 나자 인근에 있던 택시들이 불빛 본 나방처럼 모여들어서는 우리를 포위해 버렸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모여 있던 택시 중 하나를 잡아 타고 집으로 가려했으나, 그 기사 왈 교통사고는 하루 지나봐야 안다며 병원에 갈 것을 침을 튀기며 권했다.

  결국 그의 열정에 동의했더니 자기가 아는 병원이 있다며 모시겠다고 했다. 병원으로 가면서 기사들 간의 무전을 통해서 사고 운전자는 음주 운전에 무보험 차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에 도착한 기사는 수속까지 대행해 주기에 감사의 표시로 5-6천원 나온 요금에 더 얹어서 2만원을 주었다. 그 보답인지 사고 운전자에게 합의 보는 요령을 장황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중간쯤에서 자르고 아제, “내 속에 있는 말 솔직하게 해도 돼요?” 하니까 기탄없이 하란다.

  "아제, 죳 빠는 소리 그만하고 이제 가소~!!"

  뒤에 안 사실이지만 그 병원은 교통사고 환자를 실어다 주면 기사에게 수고비를 주는 곳이었다.병원에서 엑스레이와 시티촬영을 하자기에 달리 골절이나 내출혈로 의심될만한 증세가 전혀 없으니 일단 경과를 보자 했더니 일단 교통사고 환자는 촬영을 하는 게 맞는다고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링거액을 꽂고 입원실에 들어오니 5시 가까이 되었으나 잠이 오지 않았다. 형에게 전화를 하여 대략 사정을 얘기했다. 7시가 다 되어 갈 때 형이 도착했다. 어둠살이 가시기도 전이었다.

  내 상태를 확인한 형은 껄껄 웃으며 아침을 사주겠다고 했다. 국밥집에 나를 데려간 형은 밥은 먹지 않고 귀찮으리만큼 전후 사정을 꼼꼼히 묻더니, 사고 낸 글마한테 바가지 씌우지 말라고 당부를 하더니, 그래도 내 동생이 입원했는데 하면서 10만원을 내놓았다.

병실로 돌아오니 나를 찾는다기에 옆 병실로 갔더니 사고를 당한 택시 기사가 환자복으로 누워 있었다. 그의 모습에서 능히 짐작 가는 바가 있어

 “아제가 어디 다쳤다고 이 꼴로 있소?” 하니 당황한 표정으로 휴게실로 가자고 했다.

  다 죽어가는 얼굴로 허리를 굽히고 구부정한 자세로 걸어가는 그를 향해서 모르는 넘이 보면 영판 중환잔 줄 알겠다며 막 웃었다. 달리 검사를 했냐고 물었더니 엑스레이와 시티촬영을 했단다.

 “음주운전 그 자체야 변명의 여지가 없이 잘못된 행위긴 하지만 보험 넣을 형편이 안돼서 무보험인 넘에게 뭐 벗길 게 있다고 검사를 했소?” 하니 자기로선 보상을 받아야겠으니 입원과 검사 과정은 필수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짜증이 팍 나기에 난 좀 자야겠으니 사고 운전자 오면 불러라 하고선 병실로 돌아와 버렸다.

  자다가 얼떨결에 휴게실로 갔더니 체중이 50킬로나 나갈까 싶은 사내 하나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제가 사고 낸 기사요? 하니 그렇단다. 다짜고짜로 지금 당장 사만 원부터 달라고 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좋은 말 할 때 내놓으라 해선 택시 기사에게 만원을 주고 삼만 원은 내 지갑에 챙기며

 “사람이 말이야 지가 사고를 내놓고 우째 빈손으로 올 수 있소? 그럴 정신이 없어서 그런 거지 예를 몰라서 그런 게 아니라 믿고 기사랑 내 음료수 값 만원씩 하고 사고 지점에서 병원까지 갈아타고 온 택시비 이만 원이요." 그제야 표정이 펴지며 당연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후 나는 다분히 내 재미로 사고를 낸 기사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는 나염 현수막 제작업을 하였으나 말아먹고 지금은 일이 있을 때 간판 집에 일용직으로 나가며, 자동차보험은 만료일에서 1주일 지났고 사고 낸 그날은 일주일간의 공사가 끝나서 임금을 받고 업주에게서 술 한 잔 얻어먹고 귀가 하던 길이라고 했다.
 
  월요일에 보험을 살리려 했는데 이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다세대 주택에 전세로 있고 부인은 전업주부며 딸은 고교졸업반이고 혈육이라곤 위에 형이 하나 있고, 항만 노조 일을 하는데 사이가 안 좋아 왕래가 없다시피 하다고 했다. 합의금으로 얼마를 준비해왔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받은 임금과 주변에 둘러 둘러 120만 원을 구해 왔다고 했다. 그 소릴 들은 택시 기사는 기도 안 찬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려는 순간 아제는 가만히 있으소~!! 하고 제동을 걸었다.

  "보소, 아제, 아제가 여태 살면서 얼마나 많은 우환을 겪었는지 모르나, 이번 일은 아제가 일생동안 겪은 우환 중, 몇 안 되는 우환일 거요. 아제 사정을 들어보니 기도 안 차지만 그금액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하오. 아무리 형제는 남의 시작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그래도 우환에는 피붙이만한 게 없으니 형에게 가서 기름이라도 짜소. 알코올 농도 0.12에 인피 둘에 합의서 미제출이면 형사처벌이오. 더군다나 보험도 안 되니 우리가 병원에 있으면 1일 20만원씩 두 사람이면 아제 부담도 상당할 거요. 오늘은 일요일이라 별다른 진료가 없었지만, 내일 의사가 출근 하면 아제는 진짜 죳돼요. 마눌, 자식만 팔지 말고 다 팔아서 다시 오소."

  가해 운전자를 보내놓고 택시 기사에게 밥 사준다고 데리고 나가서 국밥 한 그릇씩 먹고 병원 앞에 있는 다방으로 갔다. 입수구리 벌겋게 바른 여급 둘이 쪼르르 달려와서 코딱지 앉은 소리로 알랑거리니 허리를 못 펴겠다던 넘이 순식간에 헤벌레하는 모습을 보니 짜증이 났다. 우린 지금 할 얘기가 있으니 니들 묵고 싶은 차를 묵되 다른 자리로 가서 먹으라 하고는 기사에게 작업 들어갔다.

  "아제 보소, 한국서 회사 택시 기사만큼 돈 안 되고 힘든 직업 없다는 건 내 익히 알고 있소. 아제는 머시마 치곤 인물도 좋고 체격도 우람한 게 택시 기사하기엔 아까운 사람이오. 아제도 봤다시피 아까 글마 사는 게 갑갑한 넘입디다. 우리 글마한테 바가지 씌우지 맙시다. 아제 말로는 차량 수리가 90만원 나왔다 했지만 그거 공갈인 줄 알고 있소. 50이면 뒤집어쓰잖소. 그러니 차 수리비 50만 원에 일주일 간 임금 손실 50만 원, 위로금 20만 원해서 120에 쇼부 보소. 아제 보다 못한 넘의 불행을 기회로 목구멍에 때 벗기기엔 아제 인물이 아깝소. 병원비야 어차피 글마가 낼 거고 담에 있는 넘 만나면 그때 지기 삐고 내 말대로 하소."

  나는 얼마 받을 거냐고 묻기에 나야 고급 인력이니 당연히 기사 보다 일일 임금은 더 받을 테지만 대신 하루치만 쳐서 10만 원만 받겠다고 했다. 사실 자기는 차량 보상 부분을 빼고 200을 계산했는데 나한테 꼬였다며 대신 차량 수리비는 80만 원이라기에 "정말 80만 원이요? 거짓말하지 말고, 빨리 사실대로 얘기하소." 했더니 막 웃으며 그럼 60만원으로 하잔다. 그러자며 그 자리서 가해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설명을 하고 병원비 60만 원 이상을 추가로 준비해서 내일 아침 10시 이전에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그 이후로는 의사가 출근해서 회진 들어가면 의료비가 대폭 늘어나니 필히 10시 이전에 오라고 강조를 했다.

  익일 9시도 안돼서 가해 차량 기사가 왔다. 간호사실로 가서 퇴원하겠다고 하니 현재 입원으로 잡혀 있으니 담당의의 허락 없인 안 된단다. 신경질을 있는 대로 부렸다.

  "봐라, 아가씨야~ 내가 이 병원에 들어 온 게 어제 02시 조금 지나서였고 30시간을 넘게 있었는데 이 병원에서 내게 한 처치라곤 촬영과 링거주사 한 방 놔준 게 전부다. 링거액 투입이 뭔 치료라 하겠냐만 그조차 혈관을 잘못 찾아서 8시간에 10분의 일도 안 들어가고 팔뚝만 퉁퉁 붓게 한 거 말고 뭐 있노. 내 돈 내고 내가 치료하는데 내가 퇴원 하겠다면 끝이지, 내게 병원 규정을 강요할 권리가 어디 있노? 더욱이 내가 담당의 코빼기나 봤나? 여튼 갈 거니 그리 알아라. 내 의사를 통보하는 이유는 다른 거 없고 계산을 하게 원무과로 통보 해달라는 소리다." 그제야 부랴부랴 혈당 검사와 심전도를 찍겠다고 하기에 막 웃었다.

  아가씨가 병원에서 교육받은 대로 못한 게 아니라 환자가 또라이 같아서 불가항력이었다고 하고 원무과로 통보하라 하고선 옷을 갈아입고 원무과로 내려갔다. 자비로 결제할 거니 계산을 해달라고선 5분 쯤 기다리니 명세서가 나왔다.
큰 건으로 엑스레이 135.000원, 시티촬영 340.000원으로 잡혀있었다.

  두 사람 합계 금액이 백만 원이 조금 못 되었다. 수납 직원에게 원무과 최상급자가 부장인지 과장인지 모르겠으나 불러 달라 했다. 책임자를 보나마자 대뜸 장난 치냐며 명세서를 얼굴에 던져버렸다. 원무 부장은 얼굴이 벌개져서는 일단 안으로 좀 들어가자고 했다.

  "내가 이 병원 도착하자마자 촬영을 하려기에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 하니 촬영기사 왈, 엑스레이 3만원이고 시티는 7만 몇 천 원인데 큰 부담은 아니니 찍으라 했다. 그런데 뭐? 둘 합쳐서 사십만 원이 넘어? 내가 이 병원에 있으면서 밥을 한 끼라도 먹었어? 왜 네 끼 밥값을 청구했어? 지롤 지롤……."

  그건 보험 처리했을 때 가격이고 자비로 할 땐 수가가 달라진다며 궁색한 변명을 했다. 그 자리서 심사평가원으로 전화를 해서 사정을 설명하니 청구서를 팩스로 보내달라고 했다. 그제야 원무 부장이 황급하게 뭔가 착오가 있은 거 같으니 명세서를 다시 작성 해주겠다고 했다.

  "말을 바로 하시오. 착오가 아니라 착복을 하려다 미수에 거친 거 아니오. 그걸 인정 안 하면 이 명세서는 돌려주지 않을 거니 이 자리서 결정하시오."

  미안하게 됐다며 사과를 하기에 받아 줬다. 다시 받은 명세서는 30만원이 안되었다.


  합의서 작성을 위해 다방으로 가니 입수구리 벌건 여급 셋이 우르르 와서 또 코딱지 앉은 소릴 하기에 여기 젤 비싼 거 석잔 주고 젤 싼 거 석잔 니들 잡수시되 저쪽 테이블서 먹으라 했다.

  내 몫으로 받은 십만 원에서 커피 값 제하니 8만 원이 채 안되기에 가해 운전자에게 만 원을 주며 집에 갈 때 귤이나 사가라 했다. 덧붙여 안 사가면 죽을 줄 알라 했다.


추신 : 간증이라 카이 억수로 있어 보인다. 예수도 만나고 온 것 같고...






눈팅삼매ⓒ http://albablog.kr/entry/나의-교통사고-간증기
Posted by Gene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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